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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국 국제정치와 키신저의 ‘빅딜’ 구상
[홍관희]

강대국 국제정치와 키신저의 ‘빅딜’ 구상

강대국 정치 중심 현실주의 정치학자 키신저가 한반도 문제에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것은 당사자인 우리로선 불길한 조짐이다

Written by. 홍관희   입력 : 2017-10-16 오후 2:25:07

국제사회는 공권력을 가진 중앙정부가 부재(不在)하다는 점에서 국내정치와 구별된다. ‘이리 대 이리의 투쟁’처럼 냉혹한 힘(power)에 의해 좌우되는 국제사회를 규율하기 위해 2차 대전 후 국제연합(UN)이 창설되었으나, 국력의 크기가 다양한 190여 개국으로 구성되어 효과적인 의사 결정과 집행을 기대할 수 없었다. 금년 北核을 둘러싼 美·北 간 설전에서 보았듯이, UN 총회는 회원국들이 모여 각자 의견을 개진하고 상호 친목·교류를 도모하는 다자간(multilateral) 외교·안보의 장(場)이라는데 의미가 있을 뿐이다.

UN 창설자는 이 점을 감안해 5개 강대국으로 구성된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체제를 만들었다. 그리고 안보리의 의사 결정은 상임이사국 간 다수결이 아닌, 만장일치로만 이뤄질 수 있도록 했다. 혹자는 이를 非효율적이고 非민주적이며 불평등하다고 비판할지 모르나, 다수결 체제로 했을 때 발생할 강대국 간 충돌을 감안하면 꽤 현명한 발상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강대국 간 견해 차이가 발생하여 합의를 이루지 못할 때 다수결로 결정하면, 전쟁 위기를 감수하지 않는 한 집행이 불가능하다. 그러기에 의견일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차라리 없던 일로 무산시키는 편이 국제평화를 위해 더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만큼 국제정치는 강대국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선의(善意)와 도덕·규범 및 이상(理想)도 국제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이 분명하나, 힘의 뒷받침 없이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점이 국제관계의 특징이다.

그러기에 케넷 월츠(Waltz)나 로버트 길핀(Gilphin), 존 미어샤이머(Mearsheimer) 등 현실주의 정치학자들은 국제정치란 소수의 강대국이 골격을 이루면서 게임의 규칙을 만들어내면, 그 안에서 다양한 국가들이 상호작용하며 살아가는 구조로 파악했다. 그리고 세계 역사는 끊임없는 패권국가의 성장과 쇠퇴 과정 속에서 ‘힘의 재분배’가 일어나는 과정이라고 보았다. 국제정치에서 패권국 간의 쟁투는 본질적인 속성으로 인식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세계 분쟁의 해결과 평화의 유지는 강대국 간의 합의와 협조 및 거래에 의해 이뤄진다고 파악했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北核 문제를 놓고 고민하던 중, 헨리 키신저(Kissinger) 前 국무장관을 만나 조언을 구했다고 한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키신저는 닉슨 행정부 시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으로서 美·中 대타협이라는 큰 틀 속에서, 중국의 문호 개방과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의 영입, 대만 축출, 그리고 특히 美·北베트남 간의 파리평화협정을 이끌어 낸 인물이다.

그러나 그가 1973년 2월 파리 비밀협정 체결 후 불과 2년 뒤에 北베트남에 의한 무력침공으로 南베트남이 멸망해 인도차이나 공산화가 현실화될 줄은 꿈에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월남 패망의 책임을 그에게 물을 수는 없겠지만, 정책 착오만큼은 지적돼야 한다. 北베트남의 집요한 통일 의지와 南베트남 내부 반역 세력인 베트콩의 이적(利敵) 행위, 그리고 南베트남 정권의 내부 부패 등을 과소평가한 전략적 오판(misperception)이 그의 한계였다. 또 강대국 간의 합의를 중시하다보니, 중국을 너무 과대평가하고 지나치게 선의로 대한 측면도 부인하기 어렵다.

북한 核·미사일 위협이 고조되면서 한반도 전쟁 위기가 높아지고 있는 지금, 강대국 정치 중심의 현실주의 정치학자인 키신저가 한반도 문제에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것은 한반도 당사자인 우리로선 불길한 조짐이다. 그가 평소 ‘평화’란 강대국 간의 ‘힘의 균형’과 합의하에서만 가능하다고 주장해 온 만큼, 北核 위기의 해결 및 동북아의 평화는 美·中 간 협조와 합의 곧 大타협(빅딜)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논리로 귀결될 것이 분명하다. 키신저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만남에서 ‘중국이 김정은 정권을 붕괴시키는 조건으로 주한미군을 철수시키자’고 제안했다는 소식이다.

다만 키신저가 미·북 직접대화에 대해선 소극적인 것으로 알려져 주목된다. 그는 “비핵화의 중간 단계로 핵동결을 요구하는 것은 이란식 접근법의 실수를 반복하는 것”이란 입장이다. 그러므로 “단계적 접근법은 북한의 핵개발 능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전제에서만 유효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5년간 北核 협상이 실패했음을 비판하며, 남은 “유일한 해법”은 군사옵션임을 강하게 암시하고 있다. 역대 정부로부터 北核 문제 곧 ‘엉망진창 쓰레기(mess)’를 물려받았다고 개탄하면서, 자신이 이 문제를 해결해야할 책무를 맡았음을 강조하고 있다. “내가 해결하겠다(I’ll fix the mess)”란 언급에서 그의 결심이 묻어난다.

현재 트럼프 대통령의 앞에는 대략 3개의 옵션이 놓여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첫째는 유엔 결의 2375호와 독자적 제3자 제재에 입각한 강력한 대북 제재·압박을 실행하는 것이다. 다만 이 방안이 효력을 발생시키는데 1~2년의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여 금년 말이나 내년 초로 예상되는 한반도 위기에 대처하기엔 여유가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둘째 김정은이 태평양을 향해 ICBM 시험 발사를 강행할 경우, 미국의 군사옵션 사용이 확실시된다. 이 경우 김정은 정권은 궤멸될 것이며, 미국은 전후(戰後) 질서 재구축에 나설 것이다. 그리고 美·中이 함께 북한을 분할·점령하는 시나리오가 유력시된다.

셋째 옵션으로서는 키신저의 제안대로 시진핑으로 하여금 원유 공급 중단 등의 지렛대를 활용하여 북한을 붕괴시키도록 종용하고, 그 반대급부로 미국이 주한미군을 철수시켜 대한민국을 포함하는 한반도 전체를 사실상 美·中 간 완충지대로 만드는 방안이다.

우리로선 결코 받아들이기 어려운 시나리오다. 트럼프가 과연 키신저의 조언을 받아들일 것인가? 11월 중 예정된 美·中 정상회담과 韓·美 정상회담 이후 그의 결단이 나올 것이다.

우리가 ‘적폐 vs. 新적폐’ 중심의 과거 논쟁에 휘둘려 있는 동안 한반도 바깥 정세는 일대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투키디데스(Thuchydides)는 말했다: “강대국은 그들이 원하는 것을 하고, 약소국은 그들이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을 받아들인다(The strong do what they want and the weak accept what they have to accept).”

우리가 강대국에 의해 주어지는―우리가 원치 않는―운명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비운(悲運)에 처할 만큼, 무력해져선 안 된다. 우리 스스로 힘을 만들고 일어서서 우리의 운명을 개척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탈(脫)과거→미래지향’ 정신으로 국민 단결과 안보·경제 최우선 국정 혁신, 그리고 굳건한 韓·美 동맹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왜 한국 사람들은 미군의 지원을 고마워하지 않나?”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개탄을 그냥 흘려보내선 안 된다. 그러한 언급이 나온 배경을 곰곰이 살펴보아야 한다.

트럼프는 직감이 빠르고 순간순간 결행하는 성격을 가진 사람이다. NAFTA 대신 韓·美 FTA로 과녁이 바뀌고, 11월 트럼프의 아시아 순방 시 ‘1박 한국’과 ‘3박 일본’ 일정이 운위(云謂)되는 배경을 모두 되돌아봐야 한다. 美 대사관을 포위하며 “反美-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不法 시위가 공공연히 이루어지는 모습을 미국 측에서 어떻게 받아들였을까를 곱씹어봐야 한다.(konas)

홍관희 / 고려대 교수
2017-10-19 08:3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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