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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포커스]美軍철수 운운과 월남패망 데자뷰
[홍관희]

홍관희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초빙교수)

평창 올림픽을 계기로 미·북 간 접촉의 기회가 있었으나 무위로 끝났다. 입장 차가 현격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완전한(CVID 원칙) 북핵 폐기를 요구하며 인권유린을 강도 높게 비판한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의 표현대로 북한을 감옥으로, 김정은 세습 정권을 “악(惡)의 가족”으로 본다. 도덕적이고 보편적인 관점에서의 북한 인식이다.

반면 북한은 핵보유국임을 이미 내외에 선포했고, 올림픽 남북 접촉 이후에도 ‘핵강국·핵전략국가’로서 미국과 핵 평화공존을 이루겠다는 기본전략에 변함이 없다. 한·미의 비핵화 요구를 ‘바닷물이 마르기를 기다리는 격’이라고 일축하며, 전제조건이 있는 대화를 거부한다. 김영철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이 한국 체류 중 “미국과 대화용의”를 언급한 것도 “상호관심사”(핵)를 대등한 입장에서 논의하자는 뜻이었다.

핵·미사일로 무장한 김정은 정권을 민족 개념으로 바라봐선 안 된다. ‘핵이 동족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는 북한의 거짓 주장을 액면 그대로 믿을 국민은 없을 것이다. 미군만 철수하면 북한이 핵·미사일을 앞세워 남한 침공에 나설 것이라는 것이 해외 전문가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가 미·북 간 중재 역할을 자임하는 것은 적과 동맹 사이에서 취할 태도가 아니다. 동맹은 위협에 직면했을 때 공동 대응을 맹약한 제도적 장치다. 그러므로 동맹의 기초는 적(敵) 인식의 일치다. 어느 국가든 홀로 방어할 수 없을 때 제3국과 집단방위(=동맹)를 맺어 안보를 확립할 권리가 보장된다. 유엔 헌장 51조가 규정한 내용이다.

대통령 특보인 문정인 교수가 ‘한국 대통령이 요구하면 미군은 철수해야 한다’고 발언한 것은 동맹과 안보를 송두리째 뒤흔든 것이다. 국가안보가 위중한 지금이 미군철수를 운운할 때인가. 미 국방부는 즉각 한·미 동맹이 한국의 요청에 의한 것임을 상기시켰다. 한국의 주둔 요청이 없다면 철수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반미면 어떠냐” 발언 이후, “원하지 않는 곳에 주둔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히며 2004년 주한 미지상군 1개 여단을 철수시킨 미국의 결정을 되돌아봐야 한다. 문 특보는 우리 모두의 생존을 위해 더 이상의 안보 위해(危害) 망언을 멈춰야 한다.

북한은 대화·협상을 통해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 수십 년 핵협상이 주는 교훈이다. 트럼프 행정부도 이를 잘 알기에 과거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며,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를 실패로 규정했다. 마크 내퍼 미 대리 대사가 ‘비핵화 없는 대화는 시간벌기용’이라며 맹목적 미·북 대화를 거부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자칫 북한의 거짓 핵동결 제스쳐에 기만당하면 장래 위험을 배가시키는 결과가 된다. 금주 중 평양에 가는 대북 특사에게 북한이 비핵화 의사를 내비치더라도, 이를 검증(verification)하는데 오랜 시간이 소요되고 그 와중에 또 비밀 핵·미사일 개발을 재개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미국도 대화의 문턱을 낮추고 북한도 비핵화 의지를 보이도록 하자’는 문재인 정부 입장은 북한의 핵동결·미사일 모라토리움(유예)과 한·미 훈련축소를 맞교환하자는 뜻으로 풀이된다. 중국의 쌍중단과 사실상 무엇이 다른가. 이러한 ‘동시 행동’ 방식은 2007년 2·13 합의나 2012년 2·29 협상 때 북한의 약속 위반으로 그 무용(無用)함이 충분히 입증됐다.

북한의 거짓 선동을 믿고 안보태세를 허물다간 한반도가 월남패망 패턴으로 급전환될 수 있다. 미 전략문제연구소(CSIS) 에드워드 루트워크 자문위원은 한국이 북핵 위협에 “고의적으로 무대응(deliberate inaction)”해 온 이상, 북한의 공격 시 서울 방어는 한국 몫이라고 경고했다. 북핵에 대응할 창(공포의 균형)과 방패(미사일방어) 아무 것도 갖추지 못한 채 오직 미국의 확장 핵억제력에 의존하는 현실에서, 한·미 동맹의 균열은 자멸로 가는 길이다. 동맹의 굳건한 유지가 국가존립을 위한 최선의 길이다.

국민일보 칼럼/ 2018.3.5
2018-03-04 18:5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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