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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서 아버지 잃고, 암으로 엄마까지… 홀로 남은 16세
[조선닷컴]암 투병 숨겼던 엄마 - “주변에 폐 끼치고 싶지 않다”

천안함서 아버지 잃고, 암으로 엄마까지… 홀로 남은 16세
암 투병 숨겼던 엄마 - “주변에 폐 끼치고 싶지 않다”
올해 초에야 천안함 함장에 “제 아들을 부탁드립니다”

김민기 기자
박정훈 인턴기자(서울대 정치외교학부 4학년)
입력 2021.07.23 03:45

2010년 3월, 인천광역시 백령도 인근 해상에서 천안함 폭침(爆沈)으로 정종율(당시 32세) 해군 상사가 전사했다. 아내와 만 5세 아들을 남겼다. 아내는 인천의 한 보험사에서 일하며 외아들을 길렀다. 늘 “아빠를 기억하고 존경하며, 바르게 자라라”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꿋꿋하게 생계를 꾸리던 아내 정모(43)씨는 암에 걸려, 지난 21일 결국 세상을 떠났다. 23일 발인을 거쳐 국립대전현충원의 ‘천안함 46용사 묘역’에 남편과 함께 묻힌다. 천안함 폭침 11년 만에 전사자와 유족의 첫 합장이다. 이제는 열여섯 살이 된 아들 정모군이 홀로 상주(喪主)가 됐다. 하지만 외롭지 않았다. 천안함 전우들과 시민들이 그 곁을 지켰다.

22일 오후 인천광역시 동구의 한 장례식장. 상주 완장을 찬 앳된 얼굴의 고교 1년생 정모(16)군은 검은 양복 차림으로 어머니 빈소를 지키고 있었다. 아버지의 천안함 전우들이 그를 위로하고 빈소를 지켰다. 빈소 밖에는 천안함 전우회, 천안함재단, 천안함 유족회, 해군참모총장 등이 보낸 조화가 놓였다.

오후 1시쯤 빈소를 찾은 최원일 전 천안함 함장(예비역 대령)은 “고인(故人)은 주변에 폐가 될까 봐 3년간 암 투병 중이라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면서 “외로이 투병하다 올해 초에야 제게 조용히 하나뿐인 아들을 부탁하고 가셨다”고 했다. 다른 천안함 전사자의 아내 A(39)씨는 “천안함 폭침 이후, 우리는 11년 동안 서로를 위로하며 지냈다”며 “돌아가신 언니는 아들이 항상 아빠의 죽음을 명예롭게 기억하길 바랐고, 음모론이 나올 때도 ‘우리라도 아빠를 기억하고 존경하면 된다’고 했다”고 말했다.

2010년 천안함 폭침 때 전사한 정종율 해군 상사가 아내, 아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모습. /해군
2010년 천안함 폭침 때 전사한 정종율 해군 상사가 아내, 아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모습. /해군
정군은 초등학생이던 2015년 ‘천안함 5주기’에서 아버지를 기억하는 편지를 낭독했다. “아빠. 얼굴을 잊지 않으려고 매일매일 아빠 사진을 봐요. 아빠에게 다짐해요. 아빠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강한 남자로 자라겠다고. 그래서 반드시 자랑스러운 군인이 되겠다고 약속해요. 아빠.”

빈소를 찾은 전준영(34) 천안함 생존자 전우회장은 “홀로 남겨진 정군이 잘 성장할 수 있도록 전우회에서 학업을 지원하겠다”면서 “아버지의 희생을 폄훼하는 음모론으로 더 이상 정군이 고통받는 일도 없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최 전 함장은 21일 밤 10시 10분 페이스북에 “천안함의 가족인 어린 아들이 용기를 내 세상에 일어설 수 있도록 여러분이 힘을 보태 달라. 염치 불구하고 간절히 부탁드린다”는 글을 올리고 정군의 계좌번호를 남겼다. “세상의 따뜻함과 (정군이) 혼자가 아님을 알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도 했다. 이 글이 알려진 뒤 곳곳에서 위로와 부의금이 답지했다. “소액이지만 위로가 되면 좋겠습니다” “저희 아버지도 참전 용사셨습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보냅니다” 등의 메시지와 함께 부의금을 보냈다는 인증 댓글이 소셜미디어에 줄줄이 달리기 시작했다. 5만원, 3만원, 1만원, 50만원…. 22일 오후 10시 현재, 최 전 함장의 글에는 1300여 개의 응원 메시지와 송금 인증 댓글이 달렸다.

경기도 양주시에 사는 이원숙(54)씨는 정군의 계좌에 5만원을 부쳤다. 그는 “내 남편도 36년간 국가와 군에 헌신한 군인”이라며 “천안함 침몰로 아버지를 잃은 어린 학생이 어머니까지 잃었다는 소식에 바로 송금했다”고 말했다. 서울 관악구에 사는 백모(27)씨도 3만원을 보냈다. 그는 “평소 천안함에 대한 망언이 나올 때마다 속상했는데 새벽에 우연히 최 전 함장의 글을 보게 됐다”며 “작은 금액이지만 위로가 됐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했다.

최 전 함장의 글은 인터넷 곳곳으로 빠르게 퍼져 나가고 있다. 22일 서울대와 고려대 학생 커뮤니티에 그의 글이 공유되자, ‘마음이 아프다’ ‘험난한 세상이지만 아드님께서 힘 내서 잘 일어나기를 바란다’ 등 응원 댓글과 송금 인증 글이 줄줄이 달렸다. 맘카페,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도 글이 공유됐다. 안종민 천안함 생존자 전우회 사무총장은 “천안함 전사자를 잊지 않고 후원금까지 보내 주신 시민들께 정말 감사하다”며 “아이가 조국을 사랑하는 인재로 커가는 데 작은 보탬이 되면 좋겠다”고 했다.

이날 빈소에는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를 비롯해 대선 후보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 유승민 전 의원 등 정치인의 방문도 이어졌다. 윤 전 총장은 “고인과 유가족에게 깊은 애도의 마음을 전한다”면서 “(정군이) 용기와 희망을 잃지 않도록 도움 드릴 수 있는 방법을 찾겠다”고 했다.
2021-07-23 09: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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